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2년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에 소재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1928년 정의부(正義府)에서 군자금 등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화전현(樺甸縣)에서 설립된 독립운동단체로 입법ㆍ사법ㆍ행정의 3권 분립 체제를 갖춘 중앙조직을 가졌다. 하얼빈 이남의 40여 개의 현(縣)에 거주하는 한인을 기반으로 자치행정을 실시하는 한편, 의용군을 편성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봉춘은 1922년 음력 1월 초순 관전현 소재 대한통의부에 입대하여 제8중대 무등병(無等兵)으로 배치되었다. 같은 달 중순경 공칠진(孔七珍) 등과 평남 벽동군(碧潼郡) 전시면(電時面) 전상동(展上洞)에서 군자금 200여 원을 모집하였다. 1928년 음력 2월 정의부 제5중대 2소대 무등병으로 김용준(金龍俊) 등과 평북 초산군(楚山郡) 성면(城面) 용암동(龍岩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체포되었다.
1928년 8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 초산지청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6년을 받았다. 1929년 3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2년 8월 16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假出獄關係書類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新義州地方法院 楚山支廳 : 1928.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