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3년부터 1924년까지 중국 집안현(輯安縣) 고마령(古馬嶺)에 소재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대원으로 활동하고, 1925년 진동도독부(鎭東都督府) 사령부(司令部)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이주 한인사회의 자치행정과 무장투쟁에 주력한 준정부적인 성격을 지닌 독립운동단체로 조직되었다. 총장 김동삼(金東三), 부총장 채상덕(蔡相悳), 비서과장 고할신(高轄信), 민사부장 이웅해(李雄海), 교섭부장 김승만(金承萬), 군사부장 양규열(梁圭烈), 법무부장 현정경(玄正卿), 재무부장 이병기(李炳基), 학무부장 신언갑(申彦甲), 실업부장 변창근(邊昌根), 교통부장 오동진(吳東振), 참모부장 이천민(李天民) 등이 선출되었다.
이병준은 1923년 3월 고마령에서 대한통의부에 가입한 뒤 약 1개월간 군사훈련을 받고 국내로 파견되었다. 같은 해 4월 30일 이영걸(李永杰) 등과 함께 권총으로 무장하고 평북 초산군(楚山郡) 서면(西面) 무학동(舞鶴洞), 같은 해 12월 27일 초산군 연담동(蓮潭洞) 중단리(中端里), 1924년 4월 30일, 5월 15일 초산면 직동(直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5년 3월 26일 집안현 고마령에서 진동도독부 사령부 회의가 개최될 때 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중 초산경찰서 수사대와 교전을 벌이다 체포되었다.
1925년 6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살인미수 및 강도죄로 징역 12년을 받았다. 1925년 8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1년 12월 16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史(金承學, 1970) 下卷 229면
- 假出獄關係書類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高等法院 : 1925. 10. 2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903면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956) 1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