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경북 예천(醴泉)ㆍ영천군(榮川郡), 강원도 평창군(平昌郡) 등지에서 권도연(權道淵)ㆍ최성천(崔聖天) 등과 함께 일진회원을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박진양은 권도연ㆍ최성천 등 의병 9명과 함께 경북 예천군 감천면(甘泉面) 미호리(尾湖里)에 사는 일진회원 송종락(宋鍾洛)을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 1909년 8월 7일 송종락의 집에 이르러 그를 경북 영천군 두전면(豆田面) 하두리(下豆里)로 유인하여 주막 우성교(禹成敎)의 집 앞에서 처단하였다. 1909년 10월 24일에는 예천군 보문면(普門面) 독죽리(篤竹里)에 사는 일진회원 홍갈산(洪葛山)을 총으로 사살하였다.
1909년 12월 22일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美灘面) 창리(倉里) 박성현(朴星賢)의 집에서 금 55원 30전과 기타 물품 수 점을 군수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2년 8월 1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모살(謀殺) 및 강도죄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1914년 징역 20년, 1915년 징역 15년, 1924년 징역 13년 2월 20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 1912. 8. 14)
- 刑事事件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