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0년 음력 10월경 중국 길림성(吉林省) 장백현(長白縣) 일대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입대한 뒤, 같은 해 음력 12월 함남 삼수군(三水郡)에서 일본 밀정을 처단하였으며, 1926년에도 러시아 이만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독립군비단은 1919년 5월경 장백현에서 조직된 무장독립운동 단체였다. 초기에는 함경도 지역의 민족운동 세력이 장백현으로 근거지를 옮겨 조직되었는데, 1919년 10월경 중국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김정익(金鼎益)ㆍ양현경(梁玄卿) 등 7명을 파견하여 대한독립군비단총단(大韓獨立軍備團總團) 약장(約章)과 지단 규칙을 발표하는 등 체제를 강화하였다. 약장 제1장 제1조에 '본단은 임시정부 국무총리 총재 각하의 명령으로 조직한다'라고 하여 군비단이 임시정부의 적극적인 후원하에 조직된 군사기관임을 나타냈다.
1920년 음력 10월경 유상로(劉尙魯)의 권유로 장백현 16도구(道溝) 소덕수리(小德水里)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군비단에 입대하였다. 대한독립군비단 경호원(警護員)에 임명되어 기밀문서 이송과 기타 연락 사무에 종사하였다. 같은 해 음력 12월 20일에는 대한독립군비단 대원 이승만(李承晩)ㆍ김형권(金亨權) 등과 함께 일제 관헌의 밀정이었던 김치항(金致恒)을 함남 삼수군 읍관면(邑館面) 수차리(水遮里) 인근에서 처단하였다.
1926년 1월경에는 대한독립군비단 총무 윤덕보(尹德甫)의 지시를 받고 군비단원 33명과 함께 러시아 이만으로 군사교육을 받으러 파견되었다. 이만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뒤 장백현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1928년 2월경에는 광정단(匡正團)에도 가입하여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했으나, 같은 달 12일 함남 갑산군(甲山郡) 보혜면(普惠面) 천수리(泉水里)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8년 3월 26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살인죄,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31년 5월 13일 함흥형무소(咸興刑務所)에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關係書類
- 中外日報(1928. 2. 22, 3. 4)
- 每日申報(1928.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