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러시아 재피거우에 소재한 의군단(義軍團)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군단은 의군부 또는 대한의군단도독부 등으로 불렸으며 북간도는 물론 인접한 연해주 등지에서 활동했던 의병장을 중심으로 1919년 4월경에 조직되었다. 이범윤(李範允)ㆍ진학신(秦學新)ㆍ최우익(崔友翼)ㆍ김청풍(金淸風)ㆍ김현규(金鉉圭)ㆍ신립(申立)ㆍ지우강(池雨江) 등이 주동이 되어 화룡현(和龍縣) 신봉동(新鳳洞) 명월구(明月溝)에 근거를 두었다. 간도 용정 국자가(局子街) 일대와 두만강 대안(對岸) 각지의 일본 경찰과 한인 주구배들을 처단하는데 힘썼으며,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연합하여 청산리대첩 중 어랑촌전투(漁郞村戰鬪)에 참가하여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1920년 의군단에 가입하여 소대장 김홍극(金弘極)의 휘하에서 1921년 8월경까지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문서 작성과 송발(送發), 단장의 명령 전달, 금전 수납 등을 담당하였다. 1922년 음력 7월경 함북 일대, 같은 해 12월까지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촌(龍井村)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1922년 말경 체포되었다.
1923년 1월 19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淸津支廳)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같은 해 4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8년 11월 10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23. 4. 23)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刑事控訴事件簿
- 朝鮮日報(1923. 2. 6)
- 每日申報(1923. 2. 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0집 80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