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0월
- 처단(處斷) :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서울에서 윤종석(尹鍾奭) 등과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연통제(聯通制)에 관해 논의하였고, 1921년 음력 3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 '독립을 속히 승낙하라'는 장서(長書)를 제출하였다. 1921년 10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총장(財務總長) 이시영(李始榮)의 지시로 군자금 모집과 독립사상 선전 및 일본 경찰ㆍ관리를 처단하는 활동을 위해 평북 신의주(新義州)에 도착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10월경 윤종석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통제 설치를 논의해 서울에 본부를 두고 각 도에 감독부를 설치하기로 합의하고, 그는 각도 감독부를 맡기로 했다. 이후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촌(龍井村)으로 건너가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청년을 교육하기 위하여 학교를 설립하였다.
1921년 음력 3월 30일경 조선총독부에 '한국을 병합한 것은 부도덕한 일이니 속히 조선독립을 승낙하라'는 장서를 제출하였다. 같은 해 10월 5일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을 만나 군자금 모집, 독립사상 선전, 조선인 민적(民籍) 조사, 경찰ㆍ관리 처단 등의 지시를 받고, 1921년 11월 20일 중국 안동현(安東縣)을 출발하여 신의주에 도착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22년 3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살인미수죄로 징역 5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每日申報(1920. 11. 23)
- 東亞日報(1922. 1. 18, 1925.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