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43년 평남 평양(平壤)에서 인천육군조병창(仁川陸軍造兵廠) 평양제조소(平壤製造所) 공원(工員)으로 근무 중 동문회(同文會)에 가입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인천에 있던 일본육군조병창은 1937년 7월 중일전쟁 이후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병기와 군수품 보급이 절실해지자 1939~1940년경 증설된 무기공장이었는데, 평양제조소는 이미 1920년대부터 일본 내 육군조병창 직속으로 설치된 조선 내 대표적인 무기제조소였다.
양윤석은 인천육군조병창 평양제조소에 근무하면서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차별대우가 심하다는 것을 알고, 민족의식을 품고 독립을 희망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42년 3월경 제2공장 내에서 천추승복(千秋承福), 삼진산번(三津山繁) 등이 동문회라는 결사를 조직하자, 5월 하순경 가입하였다. 동문회는 조선문학 연구를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작품을 발표하여 일반에 민족사상을 보급하고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조직이었다. 양윤석은 동문회에서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동료들과 함께 붙잡혔다.
1943년 12월 1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고 공소 중 1944년 1월 7일 평양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 : 1944. 1. 25)暴徒에 關한 狀況報告(1908. 7. 21) 暴徒에 關한 編冊
- 判決文(平壤地方法院 : 1943.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