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평북 운산군(雲山郡)에서 중국 남만주에 근거를 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운산지단(雲山支團)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독립단은 3ㆍ1운동을 계기로 보다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보약사(保約社)ㆍ향약계(鄕約契)ㆍ농무계(農務契)ㆍ포수단(砲手團) 등 주로 의병운동(義兵運動) 계열의 인사들이 1919년 4월 각 단체를 해산하고 결성하였다. 본부는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두었으며, 도총재는 박장호(朴長浩), 부총재는 백삼규(白三圭)였으며, 도총재부 산하에는 사무기구로 총단(總團)이 있었는데 총단장에 조맹선(趙孟善), 부단장에 최영호(崔永浩)ㆍ김원섭(金元燮) 등이었다. 국내외에 모두 100여 개소의 지단과 지부를 설치하였으며, 만주지역에는 거류동포 100호 이상을 구(區)로 하는 관구(管區)를 설치하고 자치행정을 실시하였다. 환인(桓仁)ㆍ장백(長白)ㆍ무송(撫松)ㆍ임강(臨江)ㆍ관전(寬甸)ㆍ집안(輯安) 등 10개 현에 지단을 세웠다.
양하일은 1920년 음력 5월경 중국에서 파견된 대한독립단원 백상주(白尙柱)의 권유로 동단에 가입했다. 1920년 음력 8월 18일경 동지 박영준(朴永俊) 등과 운산군 성면(城面)에서 강기익(康基益)으로부터 군자금 100여 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달 23일경 백호순(白浩順)ㆍ백현관(白賢官)ㆍ백병순(白炳順) 등으로부터 군자금 200여 원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제7호 이른바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8년을 받았다. 같은 해 5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7년 2월 24일 평양형무소에서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關係書類
- 判決文(平壤覆審法院 : 1921. 5. 14)
- 東亞日報(1921.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