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4월 전남 나주군(羅州郡)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다 일본군에 체포되어 피살, 순국하였다.
호남의병의 항일투쟁은 1907년 10월 호남창의회맹소 결성을 계기로 본격화된 뒤 날이 갈수록 고조되었다. 1908년에 들어서 호남지역은 의병항쟁의 주무대가 되었으며, 1909년까지 지속되었다. 1909년을 전후한 시기에 전남 서부지역에서는 전해산(全海山), 중부지역에서는 심남일(沈南一), 동부지역에서는 안규홍(安圭洪) 등이 활동하였다. 특히 광주군(光州郡) 유림(柳林) 마을은 정익중(鄭益仲) 의병장의 출신지로 배일의식이 매우 강한 지역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개신교 신자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의병을 지지해서 일본 군경의 경계와 주목을 받아왔다.
전예중은 1909년 4월 8일 인근의 월명동(月明洞)에서, 의병가담자를 색출하기 위해 유림으로 출동한 광주수비구 선암분견대(仙岩分遣隊)에 체포되었다. 일본군은 전예중이 선암(仙岩) 서쪽 도마교(道馬橋) 부근 민가에 숨겨둔 한총(韓銃) 등 다수의 무기들을 압수하기 위해 출동하여 수색하였다. 그러나 무기를 압수하지 못한 채 돌아오던 중, 전예중은 일본군에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陣中日誌(토지주택박물관, 2010) 제3권 475~4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