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55426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文奉來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2014 훈격 애국장
1908년 6월 7일 경남(慶南) 의령군(宜寧郡) 양성동(陽成洞)에서 부하 30명과 함께 의병활동을 하다가 일군(日軍)의 습격을 받고 교전 중에 전사(戰死), 순국(殉國)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6월 경남 의령군(宜寧郡) 양성동(陽成洞)에서 의병장으로 부하 30명과 함께 활동하다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교전 중 전사, 순국하였다.

경남의 후기의병은 1907년 9월 이후 본격화되었다. 고광순(高光洵)ㆍ김동신(金東臣) 의병장 등이 지리산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하동(河東)ㆍ함양(咸陽) 등지에 통문을 돌려 국가의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면서 의병 참여자가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하여 지리산 인근의 하동ㆍ함양ㆍ산청(山淸)은 물론 그 주변 지역인 의령ㆍ거창(居昌)ㆍ언양(彦陽) 등지로 확대되었다. 경남 일대에서 활동하던 의병들이 군청, 우편취급소 등을 주로 공격하여 피해를 입게 되자, 일제는 수비대와 헌병, 경찰을 각 군(郡)에 분산, 배치하였다. 아울러 수비대는 수시로 진압작전을 전개하며 산간벽지를 수색하고, 변장대를 꾸며 의병에 큰 타격을 주었다.

1908년 6월 7일 새벽 문봉래의진은 약 30명의 의병과 함께 의령군 양성동의 한 학교에서 숙박 중이었다. 당시 의령분견대(宜寧分遣隊)는 전날부터 밤샘작전을 전개하다가 문봉래의진을 발견하고 교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문봉래 등 12명이 전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陣中日誌(토지주택박물관, 2010) 제2권 36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집 565~566면, 769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문봉래 - 경남 의령(宜寧) 후기의병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문봉래(관리번호:955426)
*오류 제목
*오류 유형
*오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