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6월 경남 의령군(宜寧郡) 양성동(陽成洞)에서 의병장으로 부하 30명과 함께 활동하다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교전 중 전사, 순국하였다.
경남의 후기의병은 1907년 9월 이후 본격화되었다. 고광순(高光洵)ㆍ김동신(金東臣) 의병장 등이 지리산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하동(河東)ㆍ함양(咸陽) 등지에 통문을 돌려 국가의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면서 의병 참여자가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하여 지리산 인근의 하동ㆍ함양ㆍ산청(山淸)은 물론 그 주변 지역인 의령ㆍ거창(居昌)ㆍ언양(彦陽) 등지로 확대되었다. 경남 일대에서 활동하던 의병들이 군청, 우편취급소 등을 주로 공격하여 피해를 입게 되자, 일제는 수비대와 헌병, 경찰을 각 군(郡)에 분산, 배치하였다. 아울러 수비대는 수시로 진압작전을 전개하며 산간벽지를 수색하고, 변장대를 꾸며 의병에 큰 타격을 주었다.
1908년 6월 7일 새벽 문봉래의진은 약 30명의 의병과 함께 의령군 양성동의 한 학교에서 숙박 중이었다. 당시 의령분견대(宜寧分遣隊)는 전날부터 밤샘작전을 전개하다가 문봉래의진을 발견하고 교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문봉래 등 12명이 전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陣中日誌(토지주택박물관, 2010) 제2권 36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집 565~566면, 76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