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음력 11월 평남 순천군(順川郡)에서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하고, 평남 성천군(成川郡)ㆍ개천군(价川郡)ㆍ순천군과 평북 영변군(寧邊郡)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음력 11월 18일 궁이양(弓履陽)은 이병탁·강국두(康國斗) 등과 함께 평남 순천군 선소면(仙沼面) 남포리(藍浦里)에 소재한 장두현(張斗鉉)의 집에서 대한청년단을 조직하고 이후 회원 50여 명을 모집하였다. 이 단체는 중국 관전현(寬甸縣)에 소재한 대한독립광복군(大韓獨立光復軍) 사령관(司令官) 조맹선(趙孟善)과 연결한 뒤,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는 한편, 무기를 구입하여 조선 내 관공리를 처단하고, 단원을 모집하여 독립군이 국내에 진주할 시 내외가 상응하여 조선독립을 달성함을 목표로 삼았다. 이병탁 등 30여 명의 단원은 평남 성천군ㆍ개천군ㆍ순천군과 평북 영변군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순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每日申報(1921. 4. 18, 8. 8)
- 東亞日報(1921. 4. 17,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