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경남 함안군(咸安郡) 군북면(郡北面)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1919년 3월 20일 독립만세운동은 오전 9시, 군북면 동촌리(東村里) 신창학교(新昌學校)에서 50여 명의 학생들이 시작하였는데, 이를 신호로 군북장터에 있던 시위 군중도 일제히 궐기하였다. 오후 1시경 3,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자, 군북경찰주재소의 경찰과 이곳에 파견되어 있던 마산(馬山) 중포병대대 병력 16명이 출동하여 공포를 발사하며 시위대열을 해산시켰다. 그러나 오후 5시경 5,000여 명으로 늘어난 군중은 다시 궐기하여 경찰주재소로 달려갔다. 일제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자, 시위 군중은 투석으로 대항하며 주재소의 유리창과 벽을 파괴하였다. 일본 군경이 시위대열에 조준사격을 감행하여 20여 명이 순국하고 18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때 박원개도 현장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3ㆍ1運動時被殺者名簿(국가기록원 소장, 1953) 90면
- 現代史資料(姜德相 編, 1971) 제25권 140, 142, 322면
- 慶南獨立運動小史(변지섭, 1966) 56~5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300~302면
- 부산ㆍ경남3ㆍ1운동사(3ㆍ1동지회, 1979) 560~561, 592면
- 증보 함안항일독립운동사(이규석, 2011) 296~29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