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하와이 한인협회, 1934년 하와이 사회문제연구회 설립에 참가하고, 1938년 펀치볼 지방회 총무, 1939년 중한민중동맹 이사원, 1943년 동 단체 총간사,
1909년~1945년까지 독립운동 자금을 여러 차례 지원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황해도(黃海道) 재령군(載寧郡) 출신으로 하와이로 이민가서 1909년 7월 17일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가피우지방회에 가입하였다. 1910년 5월 22일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파파로아지방회 대의원 및 평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14년 3월 22일 파파로아지방회 재무로 선임되었다. 파파로아 한흥학교 총무로도 활동하였다.
1930년 1월 하와이의 중립적인 인사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한 한인협회(韓人協會)의 창립회에 참여했다. 1934년 4월 27일 호놀룰루 대의원으로서 사회발전책 연구를 목적으로 하와이 한인사회를 진흥시키기로 토의했다. 1938년 6월 5일 펀치볼지방회 총무로 선출되었다.
1938년 12월 2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중한민중동맹단을 조직할 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같은 해 4월 중한민중동맹단의 이사원이 되었으며, 1943년 3월 14일 중한민중동맹단 총간사로 선출되었다. 1943년 7월 16일 오창익은 민찬호‧신을로 등과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지부를 창립하고, 승전후원금을 모집했다.
1944년 1월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총지부 후보위원 겸 재무로 선출되었고 2월 16일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총지부 재무장이 되었다. 1944년 8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에서 선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5년 1월 20일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구제원에 선임되었다. 1959년 4월 27일 81세로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별세하여 오아후 묘지에 안장되었다. 1909년부터 의무금‧인구세‧애국금 등 독립운동 자금을 계속 지원했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경성지방법원 형사사건기록(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 제989권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6. 22, 8. 2)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6. 23, 8. 2)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