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5년 태극단원(太極團員) 안경준(安敬俊)ㆍ방석홍(方錫弘)과 함께 함남과 평북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태극단은 1919년 3ㆍ1운동 이후 단장 조인관(趙仁官)을 비롯하여 정삼승(鄭森承)ㆍ김동준(金東俊) 등이 장백현(長白縣)ㆍ임강현(臨江縣)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하였다. 의용대를 편성하여 국내에서 일제에 대한 항쟁을 전개하였는데, 1921년 8월 20여 명의 단원들이 후창군(厚昌郡) 강변에서 후창경찰대와 교전하고 장진군(長津郡) 산악지대에서 일제 경찰대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다.
안영호는 1925년 4월 15일 방석홍과 함께 각각 38식 보병총과 탄환 5발, 러시아식 군총과 탄환 5발을 휴대하고 함남 영흥군(永興郡) 문태봉(文泰鳳)의 집에서 군자금 300원을 모집하였다. 1925년 7월 1일에는 안영준ㆍ방홍석과 함께 평남 덕천군(德川郡) 덕천면(德川面) 산양리(山陽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맹산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5년 9월 2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총포화약취체령(銃砲火藥取締令) 위반으로 징역 6년을 받았다. 1928년 칙령 제270호에 의해 징역 3년 9월 22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假出獄關係書類
- 判決文(平壤地方法院 : 1925. 9. 25)
- 東亞日報(1925.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