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1년 중국 장백부(長白府)에서 결성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의 문부부장(文簿部長) 김도빈(金道彬)이 국내로 들어와 함남 단천(端川)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할 때 이에 동참하여 활동하였다.
대한광복단은 1920년대 초 북간도(北間島)에서 활동한 독립군단으로 1919년 3ㆍ1운동 직후에 김성극(金星極)과 김성륜(金聖倫)이 이범윤(李範允)을 단장으로 추대하고 공교회(孔敎會) 인물들을 중심으로 왕청현(汪淸縣) 대감자(大坎子)와 의란구(依蘭溝) 일대에서 편성된 항일무장투쟁 단체였다. 단장 이범윤은 상징적 인물이었으며, 중부대판(中部大辦)의 직함을 가졌던 김성륜이 단의 실제 책임을 맡았다. 이념적으로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복벽을 주장하였다. 1920년 8월 현재 병력 200여 명에 소총 400정, 탄약 1만 1천 발, 권총 30정의 무장력을 갖추고 있었다.
오성환은 안인현(安仁賢)과 함께 군복을 입고 육혈포를 들고 16개 처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22년 6월 3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ㆍ묘지화장장(墓地火葬場) 매장(埋葬) 및 화약취체규칙(火藥取締規則) 위반죄로 징역 6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控訴事件簿
- 東亞日報(1921. 11. 29, 12. 24, 12. 31, 1922. 6. 18)
- 每日申報(1922.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