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1922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1925년 정의부(正義府)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1920년 10월 중국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에 만주 각 현(縣)에 흩어져 있던 의병계열의 인사 560여 명이 모여 각 단체를 해산하고 조직하였다. 본부는 유하현 삼원포에 두었고, 중앙기구인 도총재부(都總裁部), 도총재는 박장호(朴長浩), 부총재는 백삼규(白三圭)였다. 도총재부 산하에는 사무기구로 총단(總團)이 있었으며, 총단장에 조맹선(趙孟善), 부단장에 최영호(崔永浩)ㆍ김원섭(金元燮)이 활동하였다. 조창주는 대한독립단 단원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선천경찰서(宣川警察署)에 체포되었다. 1921년 2월 4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3년 대한통의부에서 활동하였으며, 1925년 화전현(樺甸縣)에서 정의부원으로 국내에 들어와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정의부는 1924년 길림성 화전현에서 설립된 독립운동단체로 참의부(參議部)ㆍ신민부(新民府)와 함께 3부로 통칭되었다. 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ㆍ의성단(義成團)ㆍ광정단(匡正團)ㆍ노동친목회ㆍ고본계(固本契)ㆍ대한독립군단ㆍ학우회 등이 연합해 결성되었다.
1926년 1월 31일 박천군(博川郡) 박천면 송덕동(松德洞)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 1926년 안동현(安東縣)에서 체포되었다. 1926년 3월 10일 신의주지방법원 정주지청(定州支廳)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27년 6월 27일 형 집행정지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關係書類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6. 2. 10)
- 朝鮮日報(1926. 2. 11)
- 新韓民報(1926. 3. 1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910~9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