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1월 평남 평양(平壤)에서 대한청년독립단(大韓靑年獨立團)에 가입하고 3월 1일 평양 서문통(西門通)에서 군중 3백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9월부터 12월까지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1월 28일경 평양 진향리(眞香里)에서 김면도(金冕道)의 권유로 대한청년독립단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2월 29일 김면도로부터 조선독립선언서, 경고문 및 '독립축하가' 3종을 1조(一組)로 하는 문서 25조를 받아서, 평양 상수리(上需里)ㆍ장별리(將別里)ㆍ상수구리(上水口里) 민가에 배부하였다. 3월 1일에는 평양부 서문통에서 군중 3백여 명을 선도하면서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이후 최충성(崔忠聖)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낼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의하고, 1920년 9월경 평양부 순영리(巡營里) 김병준(金炳準)에게 독립청년단원임을 밝히고 후일 6백 원을 출금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며,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이태원(李泰元)에게도 3천 원을 출금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초순경 다시 김병준의 집을 방문하여 약속한 6백 원을 모집하였으며, 같은 날 이태원의 집을 방문하여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같은 달 28일 평양 염점리(鹽店里)에서 김연홍(金蓮紅)으로부터 1,500원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16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12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8년 7월 13일 경성형무소에서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平壤地方法院第1審判決抄本(平壤地方法院 : 1921. 8. 24)
- 執行指揮書(平壤地方法院 : 1921. 8. 26)
- 身上表
- 假出獄의 件 具申(京城刑務所長 : 1928. 7. 7)
- 假出獄執行濟의 件 報告(京城刑務所長 : 1928. 7. 13)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