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음력 11월경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에 가입하고, 평남 개천군(价川郡)과 평북 영변군(寧邊郡)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궁이양(弓履陽)은 1920년 음력 11월 18일 이병탁(李炳鐸)ㆍ강국두(康國斗) 등과 함께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하고, 평남 성천군(成川郡)ㆍ개천군을 중심으로 회원 50여 명을 모집하였다. 한병건은 이 무렵 청년단의 단원이 되었다. 이 단체는 중국 관전현(寬甸縣)에 소재한 대한독립광복군(大韓獨立光復軍) 사령관(司令官) 조맹선(趙孟善)과 연결한 뒤,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는 한편, 무기를 구입하여 조선 내 관공리를 처단하고, 독립군이 국내에 진주할 시 내외가 상응하여 조선독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한병건은 덕천군(德川郡) 일하면(日下面)에 거주하는 한동진(韓東鎭)과 군자금 모집을 협의한 뒤, 1920년 12월 28일 개천군 북원시장(北院市場), 영변군 오리면(梧里面) 세죽리(細竹里)에서 군자금 30원을 모집하였다. 1921년 2월 10일과 17일, 3월 3일에도 군자금 350원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11월 2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每日申報(1921. 4. 18, 7. 23, 8. 8, 11. 9, 11. 20, 11. 27)
- 東亞日報(1921.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