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1909년 전남 일대에서 김태원의진(金泰元義陣) 및 양상기의진(梁相基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조사윤은 1907년 후반 김태원의진에서 활동하다 1908년 4월 김태원 의병장이 순국하자, 양상기의진에 합류하여 도선봉장(都先鋒將)으로 활약하였다. 김태원은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선봉장으로 활동하다 기삼연(奇參衍) 의병장이 순국한 뒤 독립하여 활동했으며, 양상기는 본래 광주경찰서 순사로 근무하다가 아버지 양진여(梁振汝)의 의병 활동으로 인해 면직된 후 부친과 함께 부자(父子)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양상기의진은 전남 광주(光州)ㆍ담양(潭陽)ㆍ화순(和順)ㆍ장성(長城)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조사윤 등은 수십 명의 규모로 일제 군경과 맞서 싸우거나, 친일세력인 일진회원 처단에 앞장섰다.
1909년 5월경 양상기 의병장이 의진을 해산하자, 조사윤은 창평군(昌平郡) 북면(北面)에 사는 친형 조덕삼(曺德三)의 집에 의병 동지였던 차식연(車植緣)과 함께 은신하였다. 이를 탐지한 일제 경찰에 차식연과 함께 1909년 11월 5일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29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 및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1912년 징역 7년 1월, 1914년 징역 5년 6월 24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受刑人名簿
- 朝鮮總督府官報(1914. 12. 7)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6) 제15권 113~114면, 제16권 106~1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