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경북 안동군(安東郡)에서 박처사의진(朴處士義陣)과 유시연의진(柳時淵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처사와 유시연은 동향(同鄕)의 의병장으로, 의병 구성원들도 두 의진을 넘나들며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박처사는 박인화(朴仁和)로 추정되는데, 30~40명의 의병을 이끌고, 주로 순사주재소를 공격하거나 자위단(自衛團)을 처단하는 활동을 벌였다. 유시연은 전기의병에 참여한 이래 중기ㆍ후기의병까지 적극적인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강점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후 국내에 돌아와 군자금을 조달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김영철은 안동이 근거지인 박처사와 유시연의진에서 군수품 확보와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30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08년 11월 10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08. 9. 30)
- 判決文(大邱控訴院 : 1908. 11. 10)
- 한말 후기의병(독립기념관, 2009) 124~1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