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평북 의주군(義州郡) 고령삭면(古寧朔面)에서 천마산대(天摩山隊)에 입단하여 군사훈련을 받고, 한성호(韓成浩)ㆍ김옥선(金玉善) 등과 함께 구성군(龜城郡)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천마산대는 1919년 3ㆍ1운동 직후에 최시흥(崔時興)ㆍ최지풍(崔志豊)ㆍ박응백(朴應伯)ㆍ최천주(崔天柱)ㆍ김세진(金世鎭)ㆍ심용준(沈龍俊)ㆍ양봉제(梁鳳濟) 등 한말의 군인들이 조직한 단체로 평북 천마산에 본거지를 두었다. 대장(隊長)은 최시흥이고 단원은 5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화승총(火繩銃)과 일본 경찰에게서 빼앗은 총검 등으로 무장하고 일제 행정기관을 공격하고, 경찰과 밀정들을 사살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조용운은 동지들과 함께 1920년 4월 26일과 27일 구성군 천마면(天摩面) 연창동(延昌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후일 군자금을 납부할 것을 약속하는 지불 승인 증서를 받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0년 8월 3일 신의주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每日申報(1920.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