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6월부터 중국 통화현(通化縣) 소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검찰(檢察)로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서 의병계열의 인사 560여 명이 모여 각 단체를 해산하고 조직하였다. 본부를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 두었는데 중앙기구는 도총재부(都總裁部)였으며, 도총재는 박장호(朴長浩), 부총재는 백삼규(白三圭)였다. 도총재부 산하에는 사무기구로 총단(總團)이 있었으며, 총단장에 조맹선(趙孟善), 부단장에 최영호(崔永浩)ㆍ김원섭(金元燮)이 활동하였다.
나영관은 1919년 6월 3일 중국 통화현 합니하(哈泥河) 대한독립단 총관(總管) 권병식(權秉武)의 부하 검찰로서 1919년 6월 20일 이화영(李化榮) 등과 함께 자성군(慈城郡) 삼풍면(三豊面) 자작령(自作岺)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11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 상해죄 등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7년 4월 27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假出獄關係書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