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3월 전남 장성군(長城郡)에서 의병 봉기를 촉구하는 격문을 인쇄하여 광주군(光州郡) 각 면으로 발송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김봉선은 김봉의(金鳳儀)·오성삼(吳成三)과 함께 호남의소(湖南義所) 도통대장(都統大將) 박용식(朴鏞植)이 작성한 의병을 모집하는 내용의 격문을 인쇄하였다. 당시 박용식이 보낸 통문은 전라도 각군 각면 각리의 모든 계층이 단결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의병에 나설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박용식은 "국가가 비록 망했다고 하나, 의(義)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망한 것이 아니요, 사람이 비록 죽었다고 하나 의가 죽지 않았으면 죽어도 죽지 않은 것"이라고 하며 의병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김봉선은 인쇄판 40매를 소지하고 있다가 1909년 5월말 광주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12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유형(流刑)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暴徒에 관한 編冊(1909. 6. 1. 6. 7)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4) 제13권 679~680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5) 제14권 584~585, 597~598면
- 受刑人名簿
- 暴徒에 관한 編冊(1909.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