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함남 홍원군(洪原郡) 용운면(龍雲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흥원지역의 만세시위는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되었다.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천도교구는 독립선언서 2,000매를 등사하고 시위 준비에 나섰다. 3월 16일 홍원 장날 천도교인 수백 명이 읍내로 모였고, 시장에 나온 주민들까지 만세 참가자는 7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이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자, 경찰이 탄압에 나서 천도교인 10명과 주민 40명이 체포되었다. 17일에도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유학봉은 이날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18일 밤에는 유주득(劉朱得)ㆍ장사월쇠(張四月釗)ㆍ최여심(崔汝深)ㆍ임삼수동(林三水洞)과 함께 용운면 인흥리(仁興里) 용운경찰관 주재소를 공격하여 근무일지, 근무표 등 공문서를 파기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훼기(毁棄)로 징역 6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19년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19. 7. 19)
- 刑事控訴事件簿
- 국내 3?1운동(독립기념관, 2009) ⅰ권 292~29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