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이강년의진(李康年義陣)과 박장호의진(朴長浩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 3월경부터 이강년의진에 참여하여 7월경 충북 영춘(永春)ㆍ충주(忠州)ㆍ청풍(淸風), 경북 문경(聞慶)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8월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활동하던 박장호의진에 참여하여 함북 경흥군(慶興郡), 평남 개천군(价川郡)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8년 7월 유인석(柳麟錫)이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갈 때 국내에 남아 의병과 군자금 모집 등을 하라는 통문을 받았다. 통문에는 "차병률은 한국에 있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유인석은 해삼위(海蔘威)로부터 60리 북에 진입, 노령(露領) 수청(水淸, 빨치산스크)의 개척지(開拓地)에 있다. 빨리 목적을 수(遂)하고 동지(同地)에 래(來)할 것이다"라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유인석의 통문을 소지하고 함북 경흥군, 평남 개천군 등지에서 의병과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08년 12월 1일 평남 개천군 중서면(中西面) 백삼규(白三奎)의 집에서 개천헌병분견소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1908년 12월 18일 개천지방재판소로 이송된 뒤 1909년 1월 26일 평양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유형(流刑) 10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受刑人名簿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3) 제12권 의병편 ⅵ 627~6288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4) 제13권 의병편 ⅴ 452~453면
- 국역 의암집(제천문화원, 2009) 154~1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