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12월경부터 양상기의진(梁相基義陣)에 참여하여 전남 광주(光州)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양상기는 대한제국 진위대(鎭衛隊)의 군인이었다. 1907년 8월 군대 해산 이후 광주경찰서(光州警察署) 순사로 근무하면서 부친인 양진여(梁振汝) 의병장, 권택(權澤) 의병장 등과 연락을 갖고 있다가 파면되었다. 그는 80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광주ㆍ담양(潭陽)ㆍ창평(昌平)ㆍ동복(同福)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벌였다.
박돌개는 1908년 12월경부터 양상기의진에 가담하여 광주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경오(李敬五)와 함께 주막 박상옥(朴尙玉)의 집에 숨어 있던 중, 1909년 4월 17일 광주경찰서 순사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5월 17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受刑人名簿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5) 제14권 17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