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40년 12월경부터 함북 길주군(吉州郡) 길주공립농업실천학교(吉州公立農業實踐學校) 재학 중 학우들과 함께 독립운동방침을 협의하였고, 1942년 8월 일본 도쿄(東京)에 유학 중 길주공립농업실천학교 학우들과 독립운동과 관련된 연락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0년 12월부터 1942년 3월까지 길주공립농업실천학교 기숙사에서 원원영언(元原英彦) 등과 회합하면서 독립운동방침을 협의하였다. 1942년 4월 일본 도쿄로 유학한 뒤에도,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과 수시로 회합하면서 "전쟁의 과정에서 일본의 국력이 쇠퇴한 기회를 타서 조선의 독립을 성취하자, 일본의 조선 통치는 전적으로 조선인을 노예화시키는 데 있다"는 등의 논의를 통하여 반일 연대의식을 강화하였다. 또한 길주공립농업실천학교 학생들과도 연계하여 일본 내 항일 학생운동의 동태와 방향, 교육자료 등 독립운동을 실천하는 방안 등을 통신하면서 독립의식을 고취하다 체포되었다.
1944년 10월 21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육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國學資料院, 1994) 제4권 996면
- 昭和特高彈壓史(高麗書林, 1986) 제8권 48면
- 月刊同和(1990) 8월호 343면
- 吉州郡誌(吉州郡誌編纂委員會, 1991) 150~1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