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5년 서울에서 13도유약소(十三道儒約所)에 참여해 일제 침략에 반대하는 통문(通文)에 서명하고, 을사오적(乙巳五賊) 처단 계획에 3만 냥을 지원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3도유약소는 김석항(金錫恒)이 1905년 음력 8월 선비들을 동지로 규합하여 설립하고 재부(財簿)를 관장하였다. 송요철은 같은 해 음력 9월 13도유약소의 13도 유생 대표 26명의 한 사람으로,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 사례를 열거하여 통박하는 유생 대표 통문에 서명하였다. 그리고 기산도(奇山度)가 계획한 을사오적(乙巳五賊) 처단 계획에 3만 냥을 지원하였다. 기산도는 박종섭(朴宗燮)ㆍ박경하(朴敬夏)ㆍ안한주(安漢周)ㆍ이종대ㆍ김석항(金錫恒) 등과 함께 을사오적 등 친일 관료를 처단할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다음날인 11월 18일 아침 서울 중서(中署) 관내 이동(泥洞) 한성모(韓聖模)의 집에서 을사늑약 체결에 찬성한 적신(賊臣)들을 처단할 거사를 준비하던 중 경찰대에게 체포되었다. 결국 결사대의 계획은 성사되지 못하였고, 대부분의 결사대원들이 경무청으로 이송되었다.
송요철은 1906년 5월 13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이른바 모살죄(謀殺罪)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平理院 : 1906. 5. 13)
- 大韓帝國官報(1907. 12. 3)
- 駐韓日本公使館記錄(國史編纂委員會, 1998) 제24권 344~345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7권 147~14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