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5년 음력 10월 서울에서 김석항(金錫恒) 등이 주도하는 을사오적(乙巳五賊) 처단 계획에 참여하여 거사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1905년 서울에서 김석항(金錫恒)ㆍ기산도(奇山度) 등이 추진하던 을사오적 처단 계획에 참여하였다. 당시 이 거사에는 이들 외에도 박경하(朴敬夏)ㆍ박종섭(朴宗燮)ㆍ이종대(李鍾大)ㆍ안한주(安漢周)ㆍ송요철(宋堯哲)ㆍ정재헌(鄭載憲)ㆍ현학표(玄鶴表) 등이 관여하였다. 이들은 1905년 음력 10월 21일 일제의 강압적인 을사늑약(乙巳勒約) 체결로 인해 한국이 멸망의 지경에 빠졌다고 보고, 이 조약을 조인한 이근택(李根澤)ㆍ이지용(李址鎔)ㆍ박제순(朴齊純)ㆍ권중현(權重顯)ㆍ이완용(李完用) 등은 국권(國權)을 훼손한 매국오적(賣國五賊)이므로 암살하고자 했던 것이다.
1905년 11월 손성원은 김석항ㆍ기산도의 지휘 아래 이태화(李太和)ㆍ박용종(朴龍鍾)ㆍ김필현(金弼鉉) 등과 함께 오적의 출입 행동을 정탐하면서 처단 기회를 엿보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들의 거사 계획은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다. 1905년 11월 28일 아침 서울 중서(中署) 관내 니동(泥洞)에 있는 한성모(韓聖模)의 집에서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당시 이들이 준비해 둔 실탄이 장치된 권총 3정과 흰 헝겊에 싸인 단도(短刀) 네 자루도 현장에서 압수를 당하였다. 이들은 모두 중서에서 경무청(警務廳)으로 이관되어 조사를 받았다.
1906년 5월 13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이른바 모살죄(謀殺罪)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취조 과정에서 받은 심한 고문으로 인해 병이 악화되어 1906년 7월 30일 감옥서(監獄署) 내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平理院 : 1906. 5. 13)
- 皇城新聞(1906. 8. 31)
- 大韓每日申報(1906. 8. 3, 8. 6, 8. 12)
- 報告書 第84號(1906. 7. 31) 司法稟報(法部) 乙卷
- 大臣暗殺陰謀者探偵捕縛의 件(1905. 11. 28) 駐韓日本公使館記錄(國史編纂委員會, 1998) 44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4집 4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