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32년 4월 중국 봉천성(奉天省) 집안현(輯安縣)에서 국민부(國民府) 지방경비대장(地方警備隊長)으로 활동하였다.
국민부는 1929년 4월 정의부(正義府)ㆍ신민부(新民府)ㆍ참의부(參議府)의 대표가 모여 결성하였으며, 요령성(遼寧省) 신빈현(新賓縣) 흥경(興京)에 본부를 두었다. 1929년 5월 28일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산하에 민사ㆍ경제ㆍ외교ㆍ군사ㆍ교육ㆍ법무ㆍ교통위원회와 중앙호위대 및 8개 중대의 군대를 조직했다. 동부(同府)는 재만 한인의 공안 유지, 단일자치기관 실현, 한ㆍ중 양 민족의 협동 작업을 목적으로 하였는데 주로 농지 및 소작 문제 해결과 교육에 주력하였다. 실제로 왕청문(旺淸門)의 화흥중학교(化興中學校)와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의 동명중학교(東明中學校)는 대표적 중등학교였으며, 1929년 11월 왕청문에 남만학원(南滿學院)을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위한 인재와 교원 양성에 노력하였다.
최덕룡은 만주국(滿洲國) 건국 이후 일제의 독립운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현상찬(玄相燦)ㆍ김한성(金漢成)ㆍ송태화(宋泰和)ㆍ김득명(金得明)ㆍ강기억(康基億)ㆍ홍명춘(洪明春)ㆍ한정범(韓貞範) 등과 함께 봉천총영사관(奉天總領事館)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2년 12월 1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32. 4. 8, 4. 10, 12. 1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612~614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每日申報(1932. 4. 7,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