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음력 4월부터 5월 말까지 함남 문천군(文川郡) 구산사(龜山社)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군으로부터 미곡(米穀)과 양식품(粮食品)을 노획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8년 음력 4월 윤동섭(尹東涉)ㆍ안국형(安國亨) 등 2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함남 문천군 구산사ㆍ오산(伍山)ㆍ장발리(張發里)ㆍ금장리(今莊里)ㆍ수안(水雁)ㆍ아치동(牙致洞)ㆍ사리원(砂利院) 등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오산의 이병오(李炳五)로부터 10원, 장발리의 권문언(權文彦)으로부터 4원, 금장리의 최화립(崔華立)으로부터 66원, 수안의 정치언(鄭致彦)으로부터 30원, 아치동의 정운(鄭雲)으로부터 총 1정을 모집하였고, 사리원에서는 일본군으로부터 미곡 등 식료품을 노획하였다.
일본군에게 체포된 뒤 함흥감옥에서 같은 방에 구금된 이창도(李昌道) 등과 1908년 11월 10일 미결 제2감방의 마루바닥을 뚫고 탈출하기도 하였다. 1909년 9월 15일 경성공소원에서 이른바 강도 및 수도도주(囚徒逃走)로 교형(絞刑)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10월 4일 대심원(大審院)에서 기각되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審院 : 1909. 10. 4)
- 刑事控訴事件簿
- 통고문(1909.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