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충남 보령(保寧) 출신으로 1909년 홍주군(洪州郡) 송지곡면(松枝谷面) 금곡리
(金谷里)에서 오양선의진(吳良善義陣)에 가담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오양선은 충남 정산·부여·보령·청양 등지에서 활동하던 소규모 의병부대를
지휘하던 의병장이다. 오양선의병진은 1908년 8월 충남 보령(保寧)의 순사주재
소를 기습하여 군수품을 수합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오양선의병진이
해산한 이후에도 잔여 의병들은 의병활동을 계속하였다.
이규상은 1909년 4월 23일 오양선의병진에서 활동하던 동료의병 14명과 함께
충남 홍주군 송지곡면(松枝谷面) 금곡리(金谷里) 송현옥(宋顯玉)의 집에서 군자
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정보를 입수하고 출동한 일경과 교전하였다. 이 전투에
서 성주경(成周京)은 교전 중 전사·순국하였고, 이규상은 의병 동료 윤경구(尹
敬九)와 함께 체포되었다.
이규상은 소위 강도죄(强盜罪)로 기소되어 1909년 5월 19일 공주지방재판소에
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는데, 동년 6월 8일 징역 5년으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
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大韓每日申報(1909. 6. 10)·皇城新聞(1909. 6. 10)
- 刑事控訴事件簿
- 暴徒逮捕의 件(1909. 4. 27)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