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충북 단양(丹陽) 출신으로 1908년 의병부대의 소모장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
다가 체포되었다.
1907년 7월 일제에 의해 광무황제가 강제 퇴위되고 이어 8월 대한제국의 군대
가 해산되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서울시위대 해산 이후 원주진위
대와 강화진위대도 군대해산에 반발하여 일본군에 대항하여 일어났다. 8월 19
일 도창의대장에 추대된 이강년(李康秊)은 충청도와 강원도, 그리고 경북 북부
지역의 각처에서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강년은 1908년 7월 2일 제천
금수산의 작성전투(鵲城戰鬪)에서 적의 탄환에 복사뼈를 맞아 사로잡혔고, 1908
년 10월 13일 사형·순국하였다. 1908년 7월 이강년이 체포된 뒤, 중군장 김상태
(金相台)를 비롯한 이강년부대의 잔여 의병장들은 단양·풍기·영주·영춘·문
경지역에서 소단위의 의병부대로 유격전을 전개하며 일본군에 항전하였다.
이범기는 1908년 10월 단양지역에서 활동하던 의병부대의 소모장(召募將)이었
다. 이범기는 1908년 10월 13일 의병 22명과 함께 단양군 남면(南面) 마조리(磨
造里)에서 일본군과 전투하였다. 이때 단양주재소에서 출동한 수비병 5명과 헌
병 1명, 그리고 보조원 4명에게 포위 된 의병은 사방으로 분산하여 탈출하였다.
이때 이범기는 순사 이종국(李鐘國)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1908년 10월 26일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기소되어, 동년 10월 30일 징역 7년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匪徒逮捕에 關한 件(1908. 11. 7)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 刑事事件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