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충남 청양(靑陽) 출신으로 1906년 3월부터 민종식의진(閔宗植義陣)에 소속되어 청양 일원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홍주의진(洪州義陳)은 1906년 3월 15일 창의하였으나 곧 실패하고 해산하였다. 이에 잔여의병을 수습한 민종식이 1906년 5월 11일 부여군 홍산(鴻山)에서 재봉기하여 5월 19일 홍주성을 점령하고, 5월 28일 의병진의 편제를 재편하였다. 이때 이남규(李南珪)는 홍주의진의 선봉장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5월 31일 일본군의 홍주성 공격이 시작되어 홍주의진은 6·70여명이 전사하고 83명이 포로가 되었다. 민종식을 비롯한 의병장들은 홍주성을 탈출하여 충남 청양·온양·공주 등지를 전전하다가 9월 그믐에 충남 예산의 이남규 집에서 회합하였다. 이들은 10월 5일 예산으로 진격하고자 하였으나 일진회원의 밀고로 11월 5일 이남규를 비롯한 의병장들이 체포되었다.
김무경은 1906년 3월부터 민종식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9년 7월 17일 청양군 동상면(東上面) 장곡리(長谷里) 자택에서 김동락과 함께 체포되었다.
소위 강도죄(强盜罪)로 기소되어 1910년 3월 22일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86) 資料 15 義兵篇 ⅷ 45면
- 暴徒逮捕의 件暴(1909. 7)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 刑事事件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