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30년대 초 영흥농민조합에 참가하여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영흥농민조합은 1930년 12월 영흥농민동맹(永興農民同盟)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순전하게 무산농민(無産農民)의 단결체를 목표로 개편된 농민운동단체이다. 경제투쟁적 성격의 농민운동에 국한하지 않고 청년부·부인부·소작부·농업노동자부·소년부 등의 부서를 설치하여 폭넓게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31년 10월 현재 영흥농민조합은 9개의 면(面) 단위 지부와 그 아래에 170여 개의 반(班) 조직을 설치했으며 회원이 1만 2,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1931년 10월 영흥농민조합에서 주도한 시위 도중에 조합원이 일본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계기로 대규모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로 인해 영흥농민조합의 간부와 조합원 다수가 검거되는 ‘영흥농민조합 사건’으로 확대되었다. 황원준 역시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12월 20일경 검찰로 압송되어 이듬해인 1932년 4월 22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그런데 예심이 채 종결되기도 전인 1932년 12월에서 1933년 1월 사이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영흥농민조합사건’은 같은 해 3월 31일에야 예심이 종결되어 공판에 회부되었는데, 옥중 순국한 농민조합 간부 차명륜(車明輪)과 함께 사망으로 인한 공소기각으로 처리되었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31. 10. 26~27, 1933. 4. 19, 5. 1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244~2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