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1년 4월 서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공채증서를 제작·사용하여 독립
운동 자금을 모집하려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1년 1월 경성부(京城府)에서 박종성(朴鍾聲), 이영훈(李英薰), 이영휘(李英
輝), 전해운(全海雲) 등과 만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로 의결한 뒤, 책임자
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임시정부 발행의 사령서와 독립공채증서 등이 없는 관계로 군자금 모집에 차질을 빚자, 중국 봉천(奉天)에서 돌아온 민정식(閔廷植)으
로부터 임시정부 발행의 100원 짜리 독립공채증서를 빌려 음력 4월 20일 삼청
동에서 박종성, 이영훈과 함께 증서를 모사·제작하였다. 이 모사된 사령서와
독립공채증서 등을 휴대하고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서운면(瑞雲面)의 민만식
(閔晩植)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1년 5월 29일 밤 10시 충북 음성, 충주, 제천 등지의 자산가들에게 군자금
모집 실행 방침을 논의하기 위해 경성부 종로2정목 중국요리집 제일루(第一樓)
에서 모였다가 경기도경찰부 형사들에게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
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1. 6. 10, 8. 16, 8. 20, 8. 27)
- 朝鮮日報(1921. 6. 10)·每日申報(1921. 7. 9)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1.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