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강두문은 경북 김천군(金泉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천읍은 경부선의 중요 읍으로 교통의 요충지이며, 경상북도에서 대구 다음가는 큰 시장이 있었다. 이곳 장은 만세운동 당시 매달 음력 5일, 10일에 열렸고 우시장(牛市場)은 다음날 열렸다.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조사로 있던 김충한(金忠漢)은 3월 초순 평양·서울 등지로 여행 중 3·1운동을 목격하고 김천읍으로 돌아와, 대구 계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 교회 장로(長老) 최용수(崔龍洙)와 교회 소사 한명수(韓明洙) 등과 김천읍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거사는 3월 11일 오후 3시 김천 욱정(旭町) 감천교(甘川橋) 부근에서 거행하기로 약정하였다. 주도면밀하게 준비했으나 거사 직전인 3월 11일 오전 11시 애석하게도 일경에게 탐지되어 주동 인물 4명이 검거되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군경의 경계가 더욱 삼엄해진 속에서도 3월 24일 오후 11시경 김인수(金仁守)·김윤상(金允祥)·최응수(崔應洙)·김영훈(金泳勳) 등이 김천면 욱정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그 후 조마면(助馬面) 신안동(新安洞)에 사는 최무길(崔武吉)이 4월 5일 김천 일본군 헌병분대 구내에 들어가 독립만세를 불렀다. 시위 후 체포된 강두문은 5월 31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受刑人名簿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456~4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