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음력 11월 조병채(趙炳彩)ㆍ양헌석(梁憲錫)ㆍ이순식(李淳植) 등과 함께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총사령관 김좌진(金佐鎭)의 명령에 따라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할 것을 결의하고, 1921년 3월 말 경남 거창(居昌), 경북 안동(安東)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대한군정서는 3ㆍ1운동 이전에 만주에서 대종교(大倧敎)인들이 조직했던 중광단(重光團)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독립군 조직으로 이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발전하였으며,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를 주도하였다. 서대파(西大坡) 십리평(十里坪)의 산림지대에 8개 동의 병영을 건립하고 사관연성소(士官鍊成所)를 두었으며, 1920년 8월 중순 현재 대원 약 1,200명, 소총 1,200정, 탄약 24만 발, 권총 150정, 수류탄 780발 기관총 7문의 무기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명화는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경리국(經理局) 경고장, 특파원증, 납금명령서, 군정부영수증용지, 포상용지 등을 소지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22년 4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상해(傷害), 총포화약류취체령시행규칙(銃砲火藥類取締令施行規則)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1922년 9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控訴事件簿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22. 9. 18)
- 每日申報(1922. 7. 6,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