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함경남도(咸鏡南道) 덕원군(德源郡) 출신으로 고향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러시아와 중국으로 이동했다. 1925년 8월 광동성(廣東省)에서 권준(權晙)을 만나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1926년 6월 중국 광주의 배영학교(培英學校)를 졸업하고, 1926년 10월 중산대학(中山大學)에 입학했다.
1926년 11월 의열단 대표대회에 출석하여 의열단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의열단 제2회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이 회의에서 기관지 『의열단보』의 매월 1회 발행이 결정되었다. 또한 광주(廣州)‧상해‧한구(漢口)‧북경(北京)에 의열단 지방부 설치가 결정되어 서응호가 광주지방 책임자가 되었다. 기관지 『의열단보』는 1927년 2월과 3월에 약 80부를 인쇄하여 단원들에 배포하였다.
1927년 4월 중순 서응호의 사회로 중산대학 문과 강당에서 약 20명의 단원이 모여 의열단 광주지방부 대회가 개최되었다. 광주지방부에서는 당원 훈련 방법으로 각자 혁명사상 함양에 힘쓰고, 서적과 신문‧잡지 등을 읽을 것이 제안되었으며 토론회를 개최하여 지식을 교환하였다.
서응호는 중산대학에 입학한 후인 1927년 10월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유월한국혁명청년회(留粤韓國革命靑年會)에 가입하였다. 청년회에서는 광동에서 중국국민당이 주도한 혁명시위 운동에 참여하였다. 1928년 1월 유월한국혁명청년회는 광동에 재류하는 한국인 모두가 입회할 수 있도록, 단체명을 유월한국혁명동지회(留粤韓國革命同志會)로 개칭하였다. 서응호는 유월한국혁명동지회의 제5소조장(小組長)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6월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선전부를 담당하고 기관지 『혁명운동』과 『혁명운동 부간』을 발행했다.
1928년 6월 28일에는 상해에서 배를 타고 국내에 들어와 고향으로 귀국했다. 문평에 있는 라이징 석유회사 사무원으로 일하며 노동운동을 하다가 원산총파업이 발생하여 면직되었다. 이후 신간회 덕원지회에서 활동하다가 1929년 8월 서울의 조선박람회를 기회로 독립운동을 계획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9년 12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중외일보(中外日報)(1929. 9. 27)
- 동아일보(東亞日報)(1929. 10. 11, 10. 18, 11. 3, 11. 12, 11. 15)
- 조선일보(朝鮮日報)(1929. 11. 15, 11. 29, 12. 8)
- 매일신보(每日申報)(1929. 11. 29)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2) 제30권 11~14, 16, 18~19, 32~34, 36~40, 44~52면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지나각지(在支那各地)(3)-조선인 동정에 관한 건 2(아세아국장 : 1924. 10. 23)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지나각지(在支那各地)(3)-조선인 행동에 관한 건(아세아국장 : 1924. 9. 26)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지나각지(在支那各地)(4)-재광동 불령선인 신원조사에 관한 건(아세아국장 : 1925. 4. 16)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