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남 산청(山淸) 사람이다.
경남 진주(晋州)의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16일, 이진하(李鎭河) 등 수 명의 동료 학생들과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동맹휴학 단행과 선전전단 작성에 관해 협의하였다. 그리하여 이튿날인 1월 17일 아침, 교장의 훈시가 끝나자 조방제(趙邦濟)가 연단으로 뛰어올라가 "우리도 조선 전반의 학생과 행동을 같이하자"고 외치고 만세삼창을 하자, 이를 신호로 동료들과 함께 학생 200여 명을 지휘하여 진주읍내와 진주읍 소재의 각 학교를 순회하며 '노예교육 폐지', '경찰의 학내침입 금지', '광주학생 석방' 등을 주장하는 격문을 살포하고 시위를 주도하다가 동년 1월 28일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1930년 3월 1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주거침입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동년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30. 5. 15 대구복심법원)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607·608면
- 동아일보(1930. 1. 20, 1. 28, 2. 2, 2. 8, 2. 24, 3. 14, 5. 16)
- 학적부(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323·324·1509∼15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