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2월 경남 합천(陜川)에서 의병단(義兵團)을 조직하고 합천ㆍ거창(居昌) 등지에서 활동하던 중 1910년 궐석재판(闕席裁判)으로 교형(絞刑)을 받고 은신하다가 1934년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성구는 거창ㆍ삼가(三嘉) 등지에 거주하는 심낙준(沈洛俊)ㆍ김문점(金文點)ㆍ김화서(金化瑞)ㆍ김유준(金有俊)ㆍ김재한(金在漢)ㆍ김상래(金尙來)ㆍ오낙삼(吳洛三)ㆍ변원화(卞元和)ㆍ최남수(崔南守)ㆍ전재관(全在寬)ㆍ송영수(宋永秀) 등 동향의 친구들과 의병단을 조직하였다.
1909년 3월 25일 합천군 사상면(砂上面) 화양동(華陽洞), 같은 해 5월 18일 삼가군 고현면(古縣面) 장기동(場基洞), 6월 18일에는 합천군 해인사(海印寺)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7월 29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방화죄로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받았다. 1934년 체포되어 징역 7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控訴院 : 1909. 9. 6)
- 東亞日報(1934.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