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경남 성주(星州)ㆍ합천(陜川)ㆍ거창(居昌)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7년 6월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배일의식이 강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켜 한국 식민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일제 통감부는 정미칠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통치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했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1908년 5월경부터 권경대는 이화집(李化執)ㆍ오경화(吳敬和) 등 의병 수 명을 모집하여 박기장(朴己長)ㆍ여국명(呂國明) 의진의 권성삼(權聖三) 등과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음력 6월 10일경 오경화 외 의병 8~9명을 이끌고 경남 합천군 숭산면(崇山面) 수전동(水田洞) 문진사(文進士)에서 군자금으로 금 30관문(貫文)을 모집하였다. 1908년 음력 8월 5일에는 권성삼 외 8~9명의 의병을 이끌고 경북 성주군 청파면(淸坡面) 우수동(牛首洞) 손선달(孫先達)의 집에서 군자금으로 한전(韓錢) 9관 300문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30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 및 폭동죄로 종신징역을 받고 공소했으나, 같은 해 10월 31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2년 칙령 23호에 의해 징역 12년, 1914년 칙령 104호에 의해 징역 9년, 1915년 칙령 205호에 의해 징역 8년 2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08. 9. 30)
- 判決文(大邱控訴院 : 1908. 10. 31)
- 判決文(大審院 : 1908. 11. 20)
- 受刑人名簿
- 刑事控訴事件簿
- 刑事第1審事件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