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7년 8월 서울에서 대한제국 시위대(侍衛隊) 병사로서 군대가 해산되자 민긍호의진(閔肯鎬義陣)에 가담하고, 1908년 5월 충북 충주군(忠州郡) 목계동(牧溪洞) 순사주재소를 공격할 것을 기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민긍호는 강원도 원주(原州) 진위대의 해산군인을 주도하여 봉기하였다. 의병부대를 소단위로 편성하여, 제천(堤川)ㆍ죽산(竹山)ㆍ장호원(長湖院)ㆍ여주(驪州)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적에게 큰 타격을 주면서 활약하였다.
1907년 8월 12일 약 2백 명으로 편성된 민긍호의진은 여주의 경무분견소를 공격하였으며, 9월 7일 약 600명의 의병부대는 홍천(洪川)ㆍ낭천(狼川)을 공격하였다. 10~12월 사이에는 강원도 횡성(橫城)ㆍ원주군 등지에서 일군과 격전을 벌였다.
1907년 8월 서울 시위대 제1대대 제3중대 이등병 박업동은 군대 해산 후 원주대(原州隊) 특무(特務)인 민긍호의 부하로서 1908년 5월 14일 밤 충주군 목계동에서 순사주재소 공격을 기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11월 30일 이른바 폭동 및 고살죄(故殺罪)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12월 17일 공소 취하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控訴事件簿
- 刑事第1審事件簿
- 匪賊逮捕의 件(1908. 5. 16)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