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30년 이전부터 국민부 부원과 조선혁명군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11월 함
북 길주군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0년 이전부터 국민부(國民府) 부원과 국민부 소속 군대인 조선혁명군(朝鮮
革命軍) 군인으로 장백현(長白縣)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30년 9월, 혁명군들과
함남 단천(端川)으로 잠입하여 광천면 운천리 거주 부호 김약한과 남두일 광천
방면에서 4~5 차례 군자금을 모집한 뒤 귀환하였다. 그러나 중국 장백현 현정
부에서 현상금을 걸고 조선혁명군 체포령을 내리며 조선혁명군 체포에 혈안이
되었다. 그러던 중 11월 7일 장백현 대마록구에서 중국 육군이 그를 체포하자,중국 육군을 때려 눕히고 탈주하였다.
이후 다시 국내로 잠입하여 활동하던 중, 이를 알아차린 혜산경찰서 고등계
주임 등이 함남 갑산군(甲山郡) 운흥면에서 그의 3형제 이호범·이익범·이홍범
을 체포하였고, 다시 그가 은신하고 있는 함북 길주(吉州)로 이동하여 11월 15
일 길주 읍내에서 그를 체포하였다. 이어 18일에는 함남 단천의 김도빈·최덕
복, 이원군(利原郡)의 이영호를 관련자로 체포하여 혜산경찰서로 압송하였다.
1931년 5월 2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총포화약취체령 위반·
뇌물수수로 징역 3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4년 4월 4일 출
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30. 11. 21, 11. 22, 12. 7)
- 朝鮮日報(1930.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