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9년 평북 천마산을 근거로 조직된 천마산대 대원으로 활동하였고, 1929년 음력 3월 중국 길림성 성내에서 정의부 교양부 비서로 활동하였으며, 같은 해 음력 4월 이후 신빈현 왕청문에서 국민부에 가입하여 외무집행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12월에서 1920년 3월 사이 평북 의주군(義州郡)에서 최시흥(崔時興) 등이 조직한 천마산대(天摩山隊) 대원으로 활동하였고, 1929년 음력 3월 길림성(吉林省) 성내(城內)에서 정의부(正義府) 교양부장 이동림(李東林)의 권유로 정의부에 가입하여 교양부 비서로 근무하였다.
1929년 4월 만주 일대의 독립군 단체인 참의부(參議府)·신민부(新民府)·정의부(正義府)가 하나로 통합하여 남만주 일대의 혁명군정부인 국민부(國民府)를 창립하자, 신빈현(新賓縣) 왕청문(旺淸門)에서 국민부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9월 27일 국민부 제1회 중앙의회 선거에서 외무집행위원(外務執行委員)으로 선임되었고, 음력 11·12월 중 유하현(柳河縣) 대사탄(大沙灘)과 환인현(桓仁縣) 이호래(二戶來) 등을 순회하며 국민부의 이념을 선전 강연하였다.
1930년 5월 국민부 군대인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소속 임기홍(林基弘)·조영화(趙永化)·최병환(崔炳煥)·임우송(林宇松)·사병익(史秉翼) 등 5명과 함께 신의주 대안(對岸)에서 체포되었다.
1932년 6월 2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2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32. 6. 25, 7. 2)
- 每日申報(1930. 7. 20, 1932. 6. 24, 7. 1)
- 判決文(平壤覆審法院:1932. 9. 29)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假出獄執行 件 報告(平壤刑務所:1937. 11. 4), 假出獄 件 具申(平壤刑務所:1937. 10. 26), 判決文(平壤覆審法院:1932. 9. 29) 假出獄關係書類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48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14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5권 5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