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6년 정의부 제7구장으로 중국 봉천성 해룡현 등지에서 군자금과 교육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음력 2월 28일 정의부(正義府) 산하 지방조직인 제7구장(區長)으로 선임되어 봉천성(奉天省) 해룡현(海龍縣) 북산성(北山城)·양수하자(揚樹河子)·가
하천자(可河川子) 등 13개소의 부락을 맡아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음력 2월 유하(柳河)지방 총관(總管) 김우근(金宇根)의 명령으로 유수하자(柳樹河子) 지역 100명으로부터 봉표소양(奉票小洋) 1,300원을, 7월 3일에는 11가구에서 77원 등 의무금(義務金)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력 10월 말 정의부 유하지방 검무원(檢務員) 김병철(金炳哲), 군인 안기원(安基元), 의사(議士) 송일성(宋一成)의 명령으로 대동구(大東溝)에서 학교교육비·지방비·지방교육비로 27가구로로부터 1,438원을 모집하여 김병철에게 전달하였다.
1928년 2월 27일 봉천성 해룡현(海龍縣) 북성자(北城子) 남문 밖 조선인민회(朝鮮人民會) 지부 서기 신행범(愼行範)의 집에서 철령(鐵嶺) 일본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어 3월 중순 신의주경찰서로 인계되었다. 1928년 5월 7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11개월 11일 동안 옥고를 치르다 1929년 2월 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每日申報(1928. 3. 28)·朝鮮日報(1928.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