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충북 보은(報恩) 출신으로 1909년 김화서의진(金化瑞義陣)에 소속되어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화서는 1907년 11월부터 부하 30명을 거느린 의병장으로 경남 합천(陜川)·안의(安義)·거창(居昌)·함양(咸陽) 등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3월 25일 김화서는 김유준·심낙준(沈落俊)·오낙삼(吳落三)을 비롯한 수명과 경남 합천의 윤석우(尹錫佑)로부터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였고, 동년 5월 18일 삼가군(三嘉郡) 정찰을 하던 김유준이 체포되자 시장 각처에 방화를 한 뒤 그 혼란을 틈타 김유준을 구출하였다. 그 외에도 김화서는 경남 일대에서 1909년 10월까지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유준은 1909년 3월 25일 의병장 김화서를 비롯하여 심낙준·오낙삼 등과 함께 경남 합천의 윤석우로부터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김유준은 동년 5월 18일 삼가군(三嘉郡) 정찰을 하던 중 체포되었는데, 김화서·심낙준 등의 의병 동료들이 시장 각처에 방화를 한 뒤 그 혼란을 틈타 구출되었다. 동년 6월 19일 합천군 각사면 치언동 해인사 불제(佛祭)에 참예인(參詣人)이 연 도박장을 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동년 7월 4일 심낙준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김유준은 소위 강도·방화죄로 기소되어 1910년 7월 29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징역 10년을 받았고, 이에 공소하여 1910년 9월 6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控訴院:1910. 9. 6)
- 刑事控訴事件簿·東亞日報(1934.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