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4년 8월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신대한독립단 단원 이동옥 등이 주도한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일찍이 간도로 망명하여 봉천성(奉天省) 동빈현(東濱縣)에 군거를 둔 신대한독립단(新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단원으로 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24년 7월 16일 단원 김만산(金萬山)·이동옥(李東玉, 이명 李光洙)·김연길(金連吉) 등과 함께 길림성 연길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에서 군자금 모집을 계획한 뒤, 연길현 지인사(志仁社) 구수동(九水河) 용수동(龍水洞)의 엄동윤(嚴東允)을 방문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려 하였으나, 부재중이므로 월말까지 군자금 400원을 마련할 것을 당부한 뒤 귀환하였다.
다음 달인 8월 8일 이동옥·박봉관(朴鳳官)·박종률과 함께 권총 등 무기를 휴대하고 엄동윤의 집을 방문하여 다시 군자금을 모집하려 하였다. 그러나 전에 요청한 군자금이 마련되지 않은 관계로 군자금 3원과 마포(베) 1필만을 제공받아 돌아왔다.
10월 10일 양진수(梁珍壽) 등과 함께 왕청현(汪淸縣) 춘윤향(春融鄕) 소백초구(小百草溝) 양반구용묘촌(楊盤邱龍卯村)을 방문하여 이원익(李元極)·김공구(金共久) 등으로부터 중국화폐로 800여 원을 모집하였다.
1925년 3월 6일 신의주지방법원(新義州地方法院)에서 소위 강도·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5년 4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7년 7월 11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刑事控訴事件簿
- 東亞日報(1925. 3. 29)
- 朝鮮日報(1925. 2. 26, 3. 29)
- 新韓民報(1925. 4. 23)
- 間島新報(1925. 2. 20)
- 중국, 대만 소재 한국사 자료 조사보고(국사편찬위원회, 2007) ii 53면
- 假出獄의 件 具申(咸興刑務所長:1928. 7. 11), 假出獄의 件 具申(咸興刑務所長:1928. 6. 30), 新義州地方法院 第1審 判決 抄本(1925. 3. 6) 假出獄關係書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