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0년 음력 4월경 중국 간도에서 야단(野團)에 가입하여 모연대장 김원식 휘
하에서 함북 길주군 웅평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음력 4월경 북간도 소재 독립운동단체 야단에 가입하여 모연대장(募捐
隊長) 김원식(金元植) 휘하에 배속되어 활동하였다. 야단은 1919년 동학의 한 교
파인 청림교(靑林敎) 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로서, 청년단원
2만 여명을 규합하여 군사훈련을 시켜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야
단의 본부는 연길현 동불사(延吉縣銅佛寺)에 소재하였고, 조직은 단장 신포(申
砲, 일명 我笑來), 간부 임창세(林昌世, 일명 甲石)·김광숙(金光淑, 일명 秉圭)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의 한 보고서에는 임창세가 단장으로 나오는 등 야단
의 통솔자는 시기에 따라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1920년 음력 8월 단장 남홍윤(南鴻允)의 명령으로 모연대장 김원식을 비롯한
모연대원 박봉길(朴鳳吉), 남학(南鶴)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같은
달 20일경 함북 길주군(吉州郡) 웅평면 남일동 거주 김하종(金河鍾), 안두경(安
斗庚) 등을 방문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체포되
었다. 1920년 7월 당시, 간도영사관은 야단회를 회장 임대성(林大聖, 이명 林甲
石)이 이끄는 청림교(靑林敎) 단체로 파악하고 있다.
1921년 7월 6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강도, 대정(大正)8년제령(制
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1년 9월 9일 경성복심법
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자 다시 상고하였다. 1921년 10월 6일 고등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1. 9. 9)
- 判決文(高等法院:1921. 10. 6)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127~1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