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김상의는 1919년 3월 함남 홍원군(洪原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홍원군의 만세 시위는 3월 16일에 시작되었다. 이날은 마침 홍원 장날이어서
장꾼들도 많이 모였을 뿐만 아니라 인근의 시위에 자극된 많은 사람들이 장터
에 모여 들었다. 오전 11시, 강인택(姜仁澤)은 수백 명의 천도교도를 이끌고 읍
내 공성상회(共誠商會) 앞에서 연설을 하였다. 연설이 끝나자 김기흥(金基興)을
선두로 700여 명의 군중이 일제히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그들은 군청 앞에 이르
러 한층 소리를 높여 만세를 불렀다.
3월 22일 홍원 시위는 다시 일어났다. 이날 오후 3시경 용포면(龍浦面)과 인근
부락에서 모여 든 군중 400여 명은 중평리(仲坪里) 사자목 산등성이에 운집하
여, 지상봉(池相鳳)·김영희(金永禧) 지휘 아래 평포(平浦) 경찰관 주재소를 향
하였다. 시위대는 급거 출동한 일본경찰관과 주재소 전방 50m 지점에서 충돌하
였다. 이 격돌로 현장에서 주낙조(朱洛祖) 외 1인이 일경의 총에 맞아 순국하고
김재훈 등 5인이 부상을 입고, 지상봉을 비롯한 주도 인물 58명이 검거되었다.
시위 후 체포된 김상의는 1919년 7월 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으로 징역 6월을 받고 공소했으나 6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控訴事件簿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6. 14)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701~703면